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영화 <괴물> | 이해받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포악한 강도가 등장한다.
지나가는 여행자를 자신의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크면 팔다리를 잘라내고 작으면 억지로 늘려 크기를 맞췄다. 어떤 사람도 키가 침대의 길이에 딱 들어맞을 수는 없었기에, 잡혀온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극단적인 비유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비슷한 일을 한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침대에 눕혀 침대에 맞춰 잘라내며 관계를 맺는다. 우리가 보통 ‘이해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실은 상대를 나의 틀에 맞춰 잘라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해가 쌓인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간다. 문제는 그 잣대가 타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을 때 생긴다.
2023년 개봉한 영화 <괴물>은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영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시계관(時界觀)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오해를 쌓아간다. 서로의 진심을 보지 못하고, 자신이 설정한 프레임 안에서 상대를 재단하며 관계를 단절한다. 이 과정에서 인물들은 철저히 고립되며, 결국 가장 약한 존재들이 희생된다. 영화는 단순히 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은 현실에서도 흔히 벌어진다.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 그의 입장이 아닌, 나의 프레임을 통해 해석한다. 상대의 행동이 내 기준과 다르면 쉽게 오해하고, 때로는 비난한다. 이해하기보다는 판단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바꾸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이 쌓이면 결국 인간은 혼자가 된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해가 계속되면, 관계는 멀어지고 단절된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존재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가장 나약한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지만 어렵다. 상대를 나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억지로 눕히려 하지 않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노력 없이 오해는 쉽게 자라고, 그렇게 쌓인 벽은 너무도 단단해진다. 영화 <괴물>이 보여주듯이, 오해와 편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파괴한다. 하지만 그 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상대의 시계를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인간은 나약하다.
오해 속에서 쉽게 부서지고, 이해받지 못할 때 더욱 외로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약함을 극복할 수 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벗어나고, 나의 잣대가 아닌 타인의 시계에서 세상을 바라보려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서로에게 덜 잔인한 존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