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도 아니라서, 무엇이든 될 수 있다.

≪ 안티프레질≫을 읽고.
1. 나도 한때는 '확실한 것'에 목을 맸다.
소위 '사'자 들어가는 전문직 시험에 기웃거린 것도 그 때문이다. 은퇴 없이 죽을 때까지 안정적으로 돈을 벌려면 전문직이어야 한다는 심플한 계산이었다. 내 이름 석 자 앞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확실한 타이틀을 달고 싶었다.
2. 지금의 나는 전문 분야가 없다.
개발자는 '개발', 디자이너는 '디자인', 마케터는 '마케팅'이라는 뚜렷한 영역 안에서 존재하고, 각자 그 안에서 성장한다. 그들 틈에서 기획자인 내가 증명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기획력’이라는 모호한 기준.
순발력, 리더십, 센스, 안목, 창의력 심지어 '아이스브레이킹' 같은 것들. 내 손으로 직접 구현해내는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늘 콤플렉스였다. 누군가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말이 길어졌다. "그냥 개발해요", "디자인해요"라고 시원하게 퉁 치고 싶었지만, 기획이라고 말하는 순간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했다.
4. 남들이 한 우물을 팔 때 나는 겉만 핥는 것 같았다.
영어로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하던데, 나는 그것을 '이도 저도 아닌, 전문가가 되지 못한 상태'라고 자조했다. 스토리를 짜는 능력이나 본질을 보는 눈, 흐름을 읽는 직감은 증명하기 어려웠고, 구질구질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5. 하지만 관점을 바꾸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때로는 그 견고한 전문성이야말로 '과최적화'된 프래질(Fragile)이다.
6. 극도로 효율적인 시스템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진다.
한 가지 기술에만 인생을 건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는 평화로운 시기에는 빛을 발하지만, 환경이 급변하면 순식간에 위기에 처한다. 망치만 가진 사람에게 나사를 주면 당황하듯이, 공장은 부품 하나의 규격만 미세하게 달라져도 라인 전체가 멈춰버린다. 제아무리 서킷 위 F1 레이싱카라도 비포장도로를 만나는 순간 고철 덩어리가 된다. 과도한 전문화는 '변화'라는 충격 앞에 가장 취약한 상태다.
7. 바야흐로 제너럴리스트의 시간이다.
단순히 '기능(Skill)'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차별화할 수 없다. 이제 중요한 건 기능과 기능을 잇는 맥락이다.
8. 나는 특정한 분야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게 맞다.) 그랬기때문에 역설적으로 나는 자유롭다. 각자의 전문성에 매몰된 모습들을 보게된다. 개발자들은 개발로 풀려하고, 디자이너는 디자인으로 해결하려 한다. 콘텐츠 마케터는 콘텐츠가 중요하다 말하고, 퍼포먼스 마케터는 광고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묶여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의 것들을 내 안으로 가져와 비틀고, 섞고, 연결할 수 있다. 아이디어는 '마케팅' 책이 아니라, '진화생물학' 책을 읽다가 마케팅에 적용할 때 튀어나온다. 이건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즐거움이다.
9. '깊이 있는 제너럴리스트(Deep Generalist)’
단순히 이것저것 조금씩 아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전문성은 '하나의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도 매몰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태도’ 그 자체에 있었다.
10. 이 유연함이야말로 충격과 변화가 일상인 이 시대에 가장 강력한 무기, ‘안티프레질(Antifragile)’이다.
11. I love my ambiguity.
Not having a fixed name means I can become anything—it's the most antifragile state to be in.